[스크랩] 단독주택에는 아이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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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재완 기자]
며칠 전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 나에게 아이가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오늘 유치원에서 집 주거와 관련된 내용이 나왔었나 보다.
5살 우리 아이가 다니는 병설유치원은 우리 집에서 걸어서 약 10분 거리에 있다. 큰 길을 육교로 건너야 하지만 그래도 가까운 편이다. 이 학교에 맞닿아 있는 아파트 단지는 상당히 규모가 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대부분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만 3세반에 다니는 우리 아이 친구들도 대부분 아파트에 산다. 아이의 증언에 따르면 15명 중 겨우 2명만이 단독주택에 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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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이(오른쪽)와 '동네 오빠' 재준이. 이 둘은 날마다 만나서 엄마 아빠 놀이에서 부터 숨바꼭질, 자전거타기, 달리기, 칼싸움, 종이접기, 그림 그리기 등 각종 놀이를 하며 정말 신나게 놀았다. 우리 부부는 "우리 한이는 날마다 어린이 날이야"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오빠가 이사갔다. |
ⓒ 오마이뉴스 장재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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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이와 동네 오빠 재준이, 우준이 형제는 그냥 삼남매였다. 같이 놀고 같이 먹고.... 그런 오빠와 동생이 지금은 없다. |
ⓒ 오마이뉴스 장재완 |
단독주택으로 이사 온 지 벌써 2년이 되었다. 그동안 단독주택에 사는 것이 얼마나 장점이 많은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다녔다. 그러나 단독주택 최대의 약점이면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 바로 '단독주택에는 아이들이 없다'는 것을 잊었었던 것 같다.
2년 전 단독주택에 살아보기로 결심하고서도 가장 큰 고민이 아이의 친구였다. 다행히도 우리가 이사 온 이 골목에는 우리 아이보다 한 살 많은 동네오빠가 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동네오빠의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어서 외동딸인 우리아이의 동생까지 덤으로 생겼다.
지난 2년 동안 이 녀석들은 거의 친남매나 다름없이 지냈다. 눈만 뜨면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 오빠 집으로 달려갔다. 유치원에 가기 전에도 얼굴을 봐야했고, 유치원이 끝난 후에는 어두워질 때까지 길에서, 오빠집에서, 우리집에서 장소를 옮겨가며 놀았다.
오죽하면 난 가끔 "한이야, 너 오빠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러면 아이는 늘 "아빠, 오빠, 둘 다"라고 말하곤 했다. 평소 하는 짓을 봐서는 당연히 "오빠"라고 말할 것 같아서 내심 불안해하면서도 아빠만큼, 어쩌면 엄마만큼 좋은 '소울메이트(?)'가 아이에게 있다는 것이 '복'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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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개맨으로 변신한 우리 아이와 동네 오빠 재준이. |
ⓒ 오마이뉴스 장재완 |
"그... 그래? 어디로?"
"응. 멀리... 근데 내가 놀러 가면 만날 수 있다는대?"
"아... 그럼 또 만날 수 있지."
담담하게 말하고 있지만 아이의 얼굴은 슬픔이 묻어났다. 그리고 닷새 쯤 지나 오빠네는 정말로 이사를 갔다. 이사 가던 날 아이는 엉엉 울었다. "오빠 보고싶어~" 하면서 우는 아이의 등을 떠밀며 유치원에 가던 아내는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아이 마음을 달래려 장난감도 사주고, 키즈카페도 데려가고, 맛있는 것도 사줬지만 순간뿐이었다. 과자를 사주면 "이제 오빠도 없으니까 한 개만 사도 되겠다"라고 말하고, 장난감을 사주면 "오빠랑 같이 놀 수도 없으니까 재미없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 아이를 보면 우리부부는 "마음에 병 들겠네... 어휴"라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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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녀석들 정말... 우리집과 동네 오빠 재준이네가 사는 골목은 막다른 골목은 아니지만, 지나가는 차가 없는 좁은 골목이다. 이 녀석들은 이 골목에서 늘 땅강아지처럼 뒹굴며 놀았다. |
ⓒ 오마이뉴스 장재완 |
"아빠, 오늘 유치원에서 재석이가 서윤이랑 결혼한대."
"그래? 재석이가 서윤이 좋아해?"
"아니, 재석이는 나를 좋아하는데, 내가 재준오빠랑 결혼한다니까 서윤이랑 결혼한대."
"어? 너는 재준오빠랑 결혼할거야?"
"응, 당연하지... 근데 오빠한테 아직 말 안했어. 다음에 오빠 집에 놀러 가면 말해야지?"
아이는 아직도 그 오빠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심지어 결혼상대자로 낙점하고 있었다. 물론, 곧 잊힐 것이다. 이별의 아픔도 겪으면서 아이는 커 갈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왠지, 젊은 부부들이 거의 없고, 아이들이 없는 단독주택으로 이사 와서 아이에게 더 큰 아픔을 주는 것은 아닌지 미안하기만 하다.
아파트에 살아도 이사로 인한 친구와의 헤어짐은 잦을 것이다. 하지만 단독주택가에 아이들이 워낙 적다보니 단짝친구를 떠나보내는 아픔이 더 큰 것 같다. 이제 누군가가 '단독주택 사는 것 어때요?'라고 물으면 조금은 망설일 듯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 편집ㅣ최은경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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