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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만난 사람] 음악애호가 이동진이 꼽는 인생의 앨범은?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굉장한 음악애호가이기도 하다. 그는 웬만한 음악관계자들보다 음반을 더 많이 사고 더 열심히 듣는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SBS 라디오 '이동진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나 '빨간책방' 카페를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전달하려 한다. 그래서 이 인터뷰의 주인공은 영화평론가 이동진보다는 음악애호가, 혹은 음악전달자 이동진이다. 그는 자신의 영향력을 부정했지만, 이 인터뷰를 읽고 핑크 플로이드나 로우, 시인과 촌장의 음반이 한 장이라도 더 팔린다면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김학선: 그동안 인터뷰를 많이 하기도 하셨고, 당하기도(?) 하셨는데 어떤 게 편한가?

▶이동진: 이제 더 이상 내가 인터뷰를 하지는 않는다. 옛날에는 인터뷰도 굉장히 많이 했다. 인터뷰 책도 두 권이나 썼으니까. 지금은 주로 인터뷰 대상이 되는데, 아무래도 인터뷰라는 게 당하는 입장에서는 반복이 많이 되기도 하고 너무 노출이 많이 되는 것도 싫고 해서 최근엔 인터뷰를 많이 안 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는 김학선 씨도 김학선 씨고, 또 내가 평소에 안 하던 주제니까 하게 됐다. 

-김학선: 더 이상 인터뷰를 진행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

▶이동진: 매체가 없기도 하고, 이제는 할 만큼 한 것 같다. 내가 이제는 기자가 아니지 않나. 기자가 상위다 하위다 이런 게 아니라 인터뷰를 한다 해도 실을 매체가 없다는 얘기다.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가 3권으로 기획이 됐고 2권까지 나왔는데 그건 할 거다. 예전에 했던 이창동 감독님 인터뷰를 포함해서 새로 해야 한다. 

-김학선: 예전에 처음 만났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직접 시디를 만들어서 선물로 준 거였다. 보통 그렇게 직접 제작한 시디를 자주 주는 편인가?

▶이동진: 예전에는 굉장히 많이 줬다. 팬 모임 비슷한 곳엘 가면 뭔가를 드리고 싶지 않나. 뭘 드릴까 하다가 내가 음악도 좋아하고 하니까 직접 시디를 만들어서 많이 드리곤 했다. 내가 직접 찍은 사진을 주면 팬 모임에 디자인 하시는 분이 계셔서 재킷까지 만들어줬다. 

-김학선: 어렸을 때 음반점에 노래 목록을 들고 가면 그대로 카세트테이프에 담아줬다. 나도 카세트테이프나 시디 만드는 걸 좋아했고, 또 워낙 남들이 듣는 음악을 궁금해 해서 이동진 씨의 시디를 받고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동진: 나도 어릴 때부터 테이프 만드는 걸 좋아했다. 믹스테이프, 이거 불법인데 쓰면 안 되는 것 아닌가?(웃음) 다른 사람이 만든 믹스테이프를 보면 '아, 이 사람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취향도 알 수 있고, 또 친구나 부모님을 맛집에 데려갔을 때 너무 맛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나. 나는 그런 기분을 음악에서 느낀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다른 사람도 좋다고 할 때 기분이 좋다.

-김학선: 음악은 주로 어떻게 듣나?

▶이동진: 음악 듣는 경로는 90%가 시디다. 10% 정도는 아이팟으로 듣는다. 스트리밍 서비스 같은 건 전혀 안 듣는다.

-김학선: 스트리밍이나 파일로 안 듣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이동진: 내가 옛날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어렸을 때 유복하게 자라지 못해서 소유욕이 강하다. 일단 갖고 본다. 책도 내 평생에 다 읽을 수 없는 책을 갖고 있다. 책, 시디, 디브이디 다 마찬가지다. 책도 만오천 권이 넘었고, 시디도 만 장이 넘고, 디브이디도 오천 장이 넘는다. 그냥 기질이다, 기질. 좋아하기도 하지만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는 말이 안 된다. 가장 최근에도 한 20장 정도 시디를 샀다. 

-김학선: 엘피는 안 사나?

▶이동진: 패가망신이다. 디브이디 같은 경우도 블루레이는 내가 안 산다. 블루레이도 있긴 한데 디브이디에 비하면 1/10도 안 되고, 만약 블루레이를 모으면 또 다 갈아야 하지 않나. 엘피도 마찬가지다. 이미 엘피에서 시디로 바꿀 때 한 번 겪었고, 예전에 레이저디스크(LD) 모으다가 실패하고 다 버린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냥 이번 생은 여기까지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학선: 통상 얘기하는 것처럼 블루레이를 보다가 디브이디를 보면 못 볼 수준인가?

▶이동진: 그 정도는 아니다. 음악도 좀 그런 편인데, 시디가 만 장이 넘는다고 하면 오디오가 굉장할 것 같지 않나. 전혀 아니다. 내가 그렇게 귀가 예민한 편이 아닌 것 같다. 사운드의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는 오디오광이 전혀 아니고, 20년 전에 산 인켈 오디오를 지금도 듣고 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물론 블루레이가 훨씬 좋지만 그 차이를 못 견뎌서 바꿀 만큼은 아니다. 

-김학선: 나도 음질 같은 것에 무딘 편인데, 주위에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오디오 시스템을 바꾸라는 권유를 많이 듣는다.

▶이동진: 대표적으로 나와 친한 기자 중에 한현우라고 있다. 한현우 씨가 음악 참 좋아하고 좋은 친구인데, 그 친구가 오디오를 많이 좋아해서 매일 날 보면 한심해 한다.(웃음) 시디가 만 장이 넘는 놈이 무슨 20만 원짜리 시디피로 듣고 있으니까 한심하다고. 나는 그런 욕심이 없다. 예전에 홈시어터 시스템을 갖추고도 결국은 디브이디도 컴퓨터로 보고 그랬다. 결국 난 그런 쪽으로는 그렇게 예민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김학선: 음악애호가로도 유명한데, 음악은 언제부터 좋아했나?

▶이동진: 영화보다 음악을 먼저 좋아했다. 지금 어쨌건 책과 영화, 음악 이 세 종류를 가지고 여러 가지 일들을 잡다하게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늦게 좋아한 게 영화다. 음악과 책은 중학교 때부터 중독돼서 많은 키드들이 그랬듯이 청계천이나 세운상가를 부지기수로 다녔다. 그때 빽판(불법 해적판) 가격이 칠백 원이었다. 빽판도 여러 종류인데 준라이센스라는 말도 안 되는 게 있었다. 그게 천 원에서 천오백 원 정도였고, 일반 빽판은 칠백 원, 빽판도 중고가 있어서 그런 건 삼백 원이었다. 내가 샤를린(Charlene)이라는 여가수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국내에서는 나온 적이 없다. 그 가수 음반을 중고 빽판 더미에서 발견했을 때 너무 좋아서 청계천에서 집에까지 걸어왔다. 우리 집이 성수동이었는데 청계천에서 성수동을 걸어왔다. 그 흥분 때문에.

-김학선: 취향은 어땠나? 또래들은 하드록이나 헤비메탈 듣고 그랬을 것 같은데.

▶이동진: 나는 영화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한 가지만 파는 취향이 아니다. 잡다하게 굉장히 많이 건드리는 편이다. 샤를린도 좋아하고, 내 평생에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핑크 플로이다(Pink Floyd)다. 핑크 플로이드 시디는 전집 같이 나온 박스세트를 빼고 부틀렉 같은 걸 다 해서 53장이 있다. 핑크 플로이드를 너무 좋아하지만 샤를린도 좋아했고 에어 서플라이(Air Supply)도 들었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취향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영화도 그렇고 책도 그렇다. 오히려 극소수의 안 듣는 장르는 있다. 너무 극단적인 음악은 안 듣는다. 예를 들면 너무 심한 정통 컨트리나 데스 메탈, 갱스터 랩 같은 건 안 듣는다. 이런 걸 빼고는 다 듣는 편이다.

-김학선: 이동진 씨가 음악애호가로서 나의 레이더에 처음 들어온 건 [천일의 몽상]이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이었다. 

▶이동진: [천일의 몽상]이 내가 선물해준 시디 같은 개념이지 않나. 난 여행 갈 때도 늘 시디를 갖고 다니고, 또 여행할 때만큼 음악을 열심히 들을 때도 없다. 예를 들어 부다페스트, 이러면 그때 들었던 음악이 생각이 난다. 내가 책 때문에 희귀한 여행을 많이 했다. 피지에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를 찍은 모누리키(Monuriki)라는 섬이 있다. 거기는 무인도라 아무나 못 가는데 다큐멘터리 촬영 때문에 1박2일 동안 머물 수 있도록 현장에 있는 추장에게 돈을 내고 하룻밤을 자고 왔다. 거기 해변에서 신문지를 덮고 자다가 추워서 깼는데 막 동이 트고 있었다. 일행은 자고 있고 나 혼자 아이팟을 귀에 꽂고 걷는데 그때 트렘블링 블루 스타스(Trembling Blue Stars)의 'I No Longer Know Anything'이 흘러 나왔다. 그 노래를 듣는 순간 정말 감정이 격앙됐다. 그 노래 가사가 또 한 문장 빼고는 다 의문문으로 이루어져있다. 제목부터 '나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알지 못하겠어요'인데, 그걸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새벽 4시에 해가 뜨고 있는데 들으니까 그 순간과 노래가 딱 붙어버린 거다. 지금도 '캐스트 어웨이'를 보든, 피지를 생각하든, 반대로 트렘블링 블루 스타스를 듣든, 이 세 가지가 자동으로 붙는다. 그 정도로 여행에서 음악이 중요하다. 그러다보니까 음반 제안을 받았을 때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하게 됐다. 

-김학선: 선곡까지 다 직접 한 걸로 알고 있다.

▶이동진: 그렇다. 기본적으로는 파스텔 뮤직과 관련이 있는 음원이었고, 로우(Low)의 'La La La Song' 같은 건 (판권을) 사서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파스텔에서 해결을 해줬다. 세 곡 정도가 그랬다. 그 전부터 다 좋아했던 노래들이다. 파스텔 음반이 집에 백 장은 넘을 거다.
 


-김학선: 지금 SBS 라디오에서 '이동진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건 어떤 방송인가?

▶이동진: 우리끼리는 '고급 심야 음악방송'이라고 한다.(웃음) 특성이 굉장히 다양한데 기본적으로는 음악방송이다. 날마다 색깔이 다른데 어떤 날은 책만 읽기도 하고, 김혜리 씨 나오는 날은 영화 얘기만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너는 토요일에 하는 'DJDJ Playlist'다. 내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선곡을 해서 들려주는데 그게 정말 행복하다. 오늘도 녹음을 했는데, 이번엔 주제가 여자 이름 한 단어로만 돼있는 노래들이었다. 보스톤(Boston)의 'Amanda'로 시작을 해서 벤 폴즈 파이브(Ben Folds Five)의 'Belinda'라든지 뎀웰스(The Damnwells)의 'Sophia'라든지 이런 노래를 쫙 모아서 튼다. 브라이트 아이즈(Bright Eyes)의 'Lua'를 좋아하는데 여기에 토토(Toto)의 'Lea'를 붙여서 튼다든지, 이렇게 여자 이름 한 단어로만 된 걸 틀었는데 재미있었다. 주제도 내가 정하고 원고 같은 것도 전혀 없다. 일요일엔 내가 낭독을 하는데 거기에 맞는 음악을 골라야 하기 때문에 토요일, 일요일엔 내가 선곡을 하고 나머지는 거의 피디가 한다. 평일에는 피디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고 주말에는 내 색깔로 간다.

-김학선: 계속 새로운 음악도 찾고 듣는 걸로 아는데 정보는 주로 어디서 얻나?

▶이동진: 외국 평들 찾아본다. 피치포크 같은 것도 보고, 올뮤직가이드 같은 것도 당연히 보고. 지금은 그런 게 흔해졌지만 초창기 올뮤직가이드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면 비슷한 음악을 추천해줬다. 그렇게 찾아낸 음악이 굉장히 많다. 그러다보니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도 잘 모르는 나만 좋아하는 밴드들이 생기더라. 또 이게 평론의 순기능일 텐데 연말에 결산을 하지 않나. 피치포크 같은 데서 베스트 뮤직으로 추천하는 걸 동영상으로 한두 곡 들어보고 좋으면 시디로 산다. 무언가를 추천해준다는 게 평론의 아주 작은 기능일 텐데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김학선: 라디오도 진행하고 빨간책방 카페에서 나오는 노래도 다 직접 선곡하는 걸로 알고 있다. 책이나 영화는 물론이겠지만 음악 쪽으로도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가?

▶이동진: 음악에 무슨 영향이 있겠나.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고, 다만 내가 특히 DJ로서 계속 추천하고 들려주고 하다 보니까 어떤 사람들에겐 느슨하게 하나의 취향으로 넓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긴 하다. 음악으로 볼 때 내가 영향력이 있지는 않다. 

-김학선: 그럼 음악을 포함해 전체적으론 어떤 거 같나? 보통 이동진 씨를 가리켜서 문화권력이란 말도 사용하는데.

▶이동진: 권력은 뭐 누려본 적도 없고.(웃음) 영화나 책은 그랬던 일이 있다. 어떤 영화가 천 만이 넘는데 그걸 천 만이 안 되게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어떤 묻혀있는 작지만 좋은 영화를 운이 잘 맞아 빛을 보게 한 경우가 있다. 책도 그렇고. [빨간책방]이란 팟캐스트 방송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 몇 번의 사례들이 있었다. 이언 매큐언의 '속죄' 같은 책이나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 같은 책이나.

-김학선: 음악 글을 써도 굉장히 잘 쓰실 것 같다.

▶이동진: 쓰고 싶은 생각이 있긴 하다. 하지만 1993년부터 일을 시작해 20년이 넘게 항상 일에 치여 살아서 지금 하는 일도 컨트롤이 잘 안 되고 있다. 쓰고 싶긴 하지만 계약된 일, 해야 할 일이 워낙 많아서 지금은 쉽지가 않을 것 같다. 예전에 핑크 플로이드 전기 쓸 생각도 했었다. 핑크 플로이드 원서를 네댓 권 갖고 있는데 그걸 바탕으로 음악적인 부분에 좀 더 치중해서 전기를 쓰려고 했다. 몇 년 전에 한 출판사와 얘기까지 했었는데, 사실 그 책을 누가 사겠나. 한 578부 정도 팔릴 거다.

-김학선: 핑크 플로이드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나?

▶이동진: 이번에 핑크 플로이드의 새 앨범이 나오지 않았나. 이번 앨범을 들으면서 '난 물론 핑크 플로이드를 좋아하지만 로저 워터스(Roger Waters)를 더 좋아하는 거구나'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핑크 플로이드 팬들이 가장 대표작으로 안 꼽는 앨범이 로저 워터스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The Final Cut]이다. 그런데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들은 음반이 [The Final Cut]이다. 제일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장 많이 들은 음반이다. [The Final Cut]은 사실상 로저 워터스의 솔로 앨범이다. 로저 워터스를 진짜 좋아한 것 같고, '90년대 말에 한국에 공연도 오지 않았나. 그때 공연장 맨 앞에서 감동에 젖어 폭풍눈물을 흘리면서 봤다.(웃음) 로저 워터스는 기본적으로 차가운 사람 같고, 어린 시절에는 그게 좋았다.
 


-김학선: 영화나 음악을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게 이른바 별점이다. 별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이동진: 일단 나는 음반을 살 때 별점에서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는다. 별점뿐 아니라 메타크리틱이나 피치포크 같은 곳은 아예 음반 하나에 9.3 이렇게 점수를 매기지 않나. 9.3이란 점수가 어떻게 나오는지 사실 말도 안 되는 거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음반이 있고 또 내가 존중하는 잘 훈련된 전문가 집단이 있고, 그 사람들이 어떤 음반을 선별해 추천해 준다면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해도 분명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 그래서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애니멀 컬렉티브(Animal Collective) 같은 경우는 내가 원래 별로 안 좋아했다. 3~4년 전에 애니멀 컬렉티브의 음반이 최고의 음반으로 꼽힌 적이 있어서 '내가 잘못 들었나?' 다시 들어봤는데 역시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런 경우가 있지만 나도 음반을 만 장 이상 산 사람이라 조금만 들어도 이걸 내가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어느 정도는 안다. 그럴 때 전문가가 추천해주는 음반을 나도 한두 곡 들어보면 알 수 있다. 큰 도움을 받는다. 좋은 비평가가 별점 매기는 사람은 아니다. 굉장히 작은 부분이고 굉장히 상업화된 부분인데 그 효용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고, 지금처럼 데이터가 너무 많아서 구분이 안 되는 시대에 전문가들이 골라주는 것이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된다. 물론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건 반드시 전제해야 한다. 

-김학선: 영화인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난 늘 음악가들과의 관계가 어렵다. 글을 처음 쓰면서부터 음악가들과 친분을 나누지 말아야지 다짐을 했는데 그 관계라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동진: '90년대만 하더라도 웬만한 영화 담당 기자들은 배우나 감독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난 기본적으로 누구와 '호형호제' 하는 것에 대한 판타지가 없다. 배우들에 대한 판타지도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아주 유명한 배우와 저녁 먹는 사이야, 미녀 여배우와 문자 주고받는 사이야, 이런 걸 자랑하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난 그렇지도 않고 그런 것에 대한 판타지도 없다. 영화계에 있는 사람과 서로 신뢰하고 좋아할 수는 있지만,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친구가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아주 친하게 지내다가 평을 쓰고 나서 갈라지는 경우도 많다. 애초에 선을 그으려고 한다. 

-김학선: 그게 성격적인 부분도 있고 직업윤리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동진: 그렇다. 가장 중요한 건 직업윤리다. 만약 내가 실력을 높이고 싶은데 내 실력이 후지다, 이런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직업윤리는 노력으로 높일 수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일 텐데, 어떤 영화를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을 때 제일 중요한 건 지지할 것이냐 지지하지 않을 것이냐 그 판단 자체다. 막말로 내가 어떤 영화를 지지하지 않겠다 마음먹으면 지지하지 않을 이유를 얼마든지 갖다 붙일 수 있다. 반대로 지지하겠다 마음먹으면 또 지지할 이유를 마음대로 갖다 붙일 수 있다. 그렇다면 최초의 판단이 굉장히 중요한데 그 최초의 판단은 결국 직업윤리로 날카롭게 벼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영화계에 있다고 누구와 친하고 내 전화번호에 배우가 몇 명이고 이러는 게 결국은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 거다. 

-김학선: 가요계는 얼마전 토토가 열풍이 불었다. 그런데 사실 이건 사회적인 현상인 거고 음악은 굉장히 부수적인 건데 이것에 대해 주로 음악평론가들이 발언을 한다. 영화로 치면 아마 '국제시장'이 여기에 해당할 텐데, 음악이든 영화든 부수적인 것에 평론가들이 발언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있다.

▶이동진: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잘 안 한다. '국제시장' 천 만 관객 같은 게 비슷한 예일 텐데, 천 만 관객 넘는다고 하면 수많은 매체에서 전화가 온다. 그럼 난 인터뷰를 안 한다. 일단 내가 잘 모른다. 말콤 글래드웰의 '티핑 포인트'에서 말하는 것처럼 천 만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는 영화는 있다. 그중에 어떤 영화가 천 만이 될지 특정해서 말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다 결과적으로 말을 하게 된다. '90년대 말에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굉장히 크게 인기를 얻었을 때 영화가 히트 친 이유를 각 신문마다 썼는데 공통적으로 거론한 게 영화의 제목이었다. 제목이 화끈하고 한 번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게 요인 중에 하나라고 썼는데 그 영화는 개봉하기 직전까지 제목이 이상하다고 굉장히 욕을 많이 먹었다. 결과를 놓고 해석하려고 하면 다 이현령비현령인 거다. 그게 진짜 그런 건지도 알 수 없고, 그런 결과주의적인 해석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거다. '변호인'이 천 만 됐고, '명량'이 천 만 됐고, '국제시장'이 천 만 된 거 다 사회 현상과 연결시켜서 얘기할 수 있다. 근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김학선: 지금 이동진 씨 삶에 영화, 음악, 책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당연히 영화인가?

▶이동진: 당연히 영화다. 그런데 영화는 나에게 취미이기도 하지만 일의 몫이 너무 크다. 책과 음악은 내 평생의 오락이다. 내가 음악에 대한 지식이 많지는 않다. 그런데 음악을 나처럼 많이 듣는 사람도 드물 거라는 생각은 한다. 지금도 항상 일할 때 시디로 음악을 듣고, 또 앨범 위주로 음악을 듣는다. 싱글을 잘 안 듣고, 앨범을 매일 다섯 장 정도씩 듣는다. 내 평생 그거를 30년 넘게 해왔다. 그 시간의 양은 엄청난 거다. 많이 듣는 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어찌됐건 시간으로만 따지면 나만큼 많이 들은 사람도 드물 거다. 책도 마찬가지다. 이 두 가지는 나를 지탱하는, 내가 시간을 견디게 만드는 오락 같은 거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에겐 정말 중요하다. 
영화는 중요하지만 어찌됐건 일이니까. 이런 건 있다. 너무 훌륭한 영화를 보면 압도당하는 느낌이 드는데, 너무 좋은 음악을 만나면 이 앞에서 모든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이런 생각이 든다. 영화는 그렇지 않다. 상대적으로 영화는 더 분석가능한 것 같고, 모든 예술은 가장 깊은 곳에서 음악적인 상태를 동경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그런 면에서 본다면 다른 매체에 없는 무언가가 음악에 있는 건 사실이다. 하다못해 'DJDJ Playlist'에서 방송할 때도 기왕이면 재미있게 하려고 농담도 하고 그러다가 어떤 음악을 듣고는 아무 말도 못하게 된다. 
그리 유명하진 않지만 'John Taylor's Month Away'라는 노래를 좋아해서 그 노래를 자주 튼다. 듣는 중간에 이렇게 좋은 노래가 있는데 DJ랍시고 누구는 어디 출신 밴드고 과거는 뭘 했고 이런 게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듣고 나서 이렇게 좋은 노래를 들었는데 내가 무슨 말을 덧붙이겠냐고 말을 했는데 영화는 그러면 안 된다.(웃음) 직업이기도 하고, 예를 들어 '언더 더 스킨(Under The Skin)'이라는 영화는 굉장한 영화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엔 이상한 영화다. 나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이런 영화 앞에서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하고 입을 닫아버리면 책임을 방기해버리는 거다. 그게 일이냐 아니냐의 차이도 있는 거고, 또 매체의 특성도 관련이 있다. 음악 평이 무엇인가, 나도 많이 읽어봤지만 예를 들어서 음악 평이 가사 평인가, 아니면 음악을 만들어낸 테크닉적인 작법 평인가, 이 모든 걸 다 종합한 아무리 잘된 평을 읽어도 그 음악의 훌륭함에 1/10에 못 닿는 경우가 많다. 그런 걸 가장 많이 느끼는 게 앨범 속지다. 옛날에는 열심히 봤는데 요즘은 잘 안 본다. 음반 속지에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음반 속지에 바라는 건 죽이 되건 밥이 되건 그 음반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고 항상 영국 밴드가 나오면 브릿팝의 역사부터 시작한다. 밴드에 대한 얘기가 시작될 때면 이미 절반이 지나가 있고 그 다음엔 이젠 밴드의 바이오그래피가 시작된다. 정작 음반에 대한 얘기는 1/4 정도다. 그러다보면 음반을 이해하는데 도움도 별로 안 되고, 리스너로서 갖는 아쉬움이다.

-김학선: 요즘 많이 듣거나 추천하고 싶은 음반이 있나?

▶이동진: 너무 많다. 평생을 그렇게 찾아 듣고 남이 안 듣는 음악을 골라 듣고 했는데도 세상에 좋은 밴드가 너무 많다. 손 오브 더 벨벳 랫(Son Of The Velvet Rat) 같은 밴드, 데빅스(Devics) 같은 밴드, 크루키드 핑거스(Crooked Fingers) 같은 밴드, 이런 팀들은 한국에서 전문가들도 잘 안 들을 텐데 듣고 있으면 정말 좋다. 로우나 마이 모닝 재키(My Morning Jacket), 포큐파인 트리(Porcupine Tree) 같은 팀들도 좋아한다. 나라도 이런 음악을 많이 틀려고 한다.

-김학선: 음악애호가 이동진이 꼽는 인생의 앨범은 무엇인가?

▶이동진: 핑크 플로이드는 정말 좋아했다. 핑크 플로이드는 정말로 이슬람 신도 같은 자세로 들었다. 항상 무릎을 꿇고 몸을 말고 바닥에 이마를 댄 채로 들었는데 그게 지금 생각해보니 이슬람 기도 자세와 비슷했던 거다. 다른 음악은 들으면서 공부도 했는데 핑크 플로이드는 음악만 나오면 다른 일을 못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아했던 음악은 핑크 플로이드고 한국 음악 중에선 하덕규, 시인과 촌장이다. '가시나무' 있는 앨범과 '비둘기' 3부작 있는 두 앨범을 너무 좋아했다. 그래도 고르자면 핑크 플로이드다. 아까 얘기한대로 로우나 마이 모닝 재킷도  좋아하지만 내가 십대 시절에 좋아한 밴드 같지는 않다. 그 시절에 어떤 음악을 좋아했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건데 핑크 플로이드는 그래서 특별하다.


정리: 웹진 [weiv] www.weiv.co.kr 
필자: 김학선 studiocarrot@naver.com

[필자 소개]
김학선: 웹진 [보다]의 편집장으로 적진(=웹진 [웨이브])에서 글을 쓰고 있다. 먹고 사는 게 이렇게 힘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