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v.media.daum.net/v/20160716163611393
[머니투데이 박보희 기자] [[the L][인물포커스] 고지운 이주민지원공익센터 변호사 인터뷰]
"사장님은 항상 말씀하셨다. 단속이 뜨면 도망가라고. 사업장에는 단속이 뜨면 울리는 비상벨이 있었는데 그날은 울리지 않았다.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그동안 사장님이 시킨대로 도망을 쳤다. 화물용 승강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려 했는데 난간이 없는 승강기 문이 열리면서 2층에서 1층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왼쪽 다리에 골절을 입었다. 사고 후 3년 가까이 지났지만 아직도 목발 없이는 걸을 수도 없다."

치료를 해야 하는데 치료비가 없었다. 근로복지공단에 업무 중 재해를 당했으니 요양급여를 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신청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 근로자의 사고는 업무상 재해일까.
사장이 '단속오면 도망가' 지시했다면 단속 중 다쳤어도 '업무상 재해'
여기까지 사연을 들었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의견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 정보를 추가하면 결론은 '절대 안된다'로 모아진다. 이 근로자는 방글라데시 국적으로 한국에 불법체류 상태였다.
"사실 소송을 하면서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더 많았어요. 비슷한 판례도 없었고, 어렵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당사자가 사고 후 장애까지 생기자 자살기도까지 하는 걸 보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사와 동행(감동)의 고지운 변호사는 2014년 이 노동자를 대리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급여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N씨는 2013년 사고를 당했지만 2014년에야 소송을 제기했다. 다들 소송을 해봤자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소송을 해주겠다고 하지 않았다.
역시 1심 재판부는 예상처럼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결정했다. 사업주가 불법취업자에게 단속을 피해 도망가라고 지시했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할 수 있지만,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또 승강장에서 떨어진 것도 스스로 뛰어내린 것이라서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평소 사장이 '단속이 오면 도망을 가라'고 지시했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같은 불법체류 상태인 동료가 증인석에 섰다. 본인이 법원에서 잡혀 강제출국 당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평소 사장이 단속이 오면 도망가라고 말해왔다고 증언을 해줬다. 처음에는 그런 적 없다고 부인했던 사장도 판사들의 계속되는 질문에 결국 단속을 알리는 비상벨이 울리면 도망을 가라고 당부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2심 재판부는 방글라데시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업주가 불법체류자에게 직접 도주를 지시했다면 단속을 피하는 과정에서 당한 사고는 사용자의 지배관리하에 이뤄졌다고 평가할 수 있어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며 "평소 단속 지침 등에 따라 위헙을 무릅쓰고 피신하는 과정에서 사고를 당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담당자 재량' 아니라 '촘촘한 법과 기준' 필요
외국인 노동자, 특히 불법체류자에 대한 인식은 최악이다. 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고 법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적용되는지를 말해도 사람들은 '불법체류자니 당연'하다며 '그렇다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들의 인권을 대변하는 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이주민을 어느 정도까지 우리나라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일까의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이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 못오게 해야죠. 그런데 우리가 필요해서 받아들이고 있잖아요.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적법한 기준을 만들어 제대로 적용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 변호사는 "외국인 노동자라고 무조건 지원해주고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노동자로서, 사람으로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권리를 갖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이,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예외가 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미등록 체류자라고 무조건 지원해주고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들 중에는 물론 나쁜 사람도 있어요. 저도 개인적으로 상처도 많이 받았고요. 어느 사회나 그런 것 처럼요. 한국에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잖아요. 죄를 짓는 사람들은 처벌을 해야죠.
하지만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불법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미등록 된 경우가 많아요. 사업주가 월급을 주지 않으려고 몰래 계약 해지나 도주 신고를 해버리거나, 계약을 하고도 신고하지 않아서 미등록이 되기도 해요. 노동자를 휴가보내놓고 사업주가 월급을 안주려고 잠적을 하기도 해요. 사업주가 잘못을 해도 강제퇴거를 당하는 건 외국인 노동자죠. 출입국관리소의 기준도 상황마다 사람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요.
외국인 노동자 중에서 한국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봐요. 다들 돈을 벌어서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죠. 예전에 우리가 그랬던 것 처럼요. 하지만 이런 일을 당하면 억울하고 한국에 오면서 쓴 비용 때문에 쉽게 돌아갈 수가 없는 거에요. 우리 법 기준이 미비해서 피해를 입은 이들이에요. 분명 법과 제도때문에 생긴 문제인데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구제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때 가장 힘들어요."
고 변호사가 이주민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변호사 자격을 얻은 직후인 2012년부터다. 우연히 이주노동자 무료 진료소에서 무료 법률 상담을 시작하면서 업이 됐다. 벌써 4년째다. 무료 상담과 무료 소송을 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힘들어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수시로 했다. 하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을 돌려보낼 수가 없었다.
"법은 있는데 구멍이 너무 많아요. 구멍에 떨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만둘 수가 없어요. 법과 제도의 문제는 한 두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비슷한 문제가 계속 생겨요. 소송이라도 해서 이길 수 있으면 좋은데 헌법소원이 필요한 경우도 많거든요. 그렇다고 당사자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를 한없이 기다려달라고 할 수도 없고요. 공정한 심사를 받을 수 있는 기준이라도 마련됐으면 좋겠어요. 사업자의 이야기만 들을 것이 아니라 노동자 당사자의 이야기도 듣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법과 제도 때문에 피해자가 생기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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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희 기자 tanbbang1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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