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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이젠 진짜 옛날 영화인데 여전히 꿀잼인 1990년대 영화 재발굴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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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을 맞이한지 벌써 20년이다. 이젠 2000년대 나온 영화도 고전영화라고 불러야 하나 싶으니까, 1990년대 영화도 '옛날이 좋았지' 하면서 떠올릴 법한 것들이 됐다. 1990년대 영화계는 20세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듯 완성도 있는 작품들을 쏟아냈다. 개중엔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언급되는 걸작도 있는가 하면, 엄청난 인기를 모았으나 점점 그 인지도가 수그러든 경우도 있다. 이번 자리는 후자, 인기와 완성도를 잡았으나 지금은 잘 언급되지 않는 영화들을 소개한다. 응답하라, 1990s!


트루 라이즈​, 1994

액션 영화 좋아하는 사람이면 다 아는 <트루 라이즈>.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아놀드 슈왈제네거 조합의 신뢰도를 다시 확인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제임스 카메론 필모그래피 중 언급이 적은 영화 중 하나인데, 이유는 간단하다. <트루 라이즈> 전은 <터미네이터 2>, 그다음은 <타이타닉>. 영화의 금자탑을 세웠다는 작품들 사이에 꼈으니, 상대적으로 빛을 못 볼 수밖에. 그럼에도 90년대 아날로그 액션과 첩보물의 클리셰를 코믹하게 풀어낸 상업영화의 진수.


​불가사리, 1990

​우리나라에선 어쩐지 토요명화, 명화극장 같은 타이틀이 잘 붙는 저예산 괴수영화 <불가사리>. 괴수영화들이 점점 몸집 불리기에 집중하던 90년대에 독특하게도 모험 활극처럼 괴수물을 그려 인기를 모았다. 중간에 코미디와 공포 코드도 적절하게 섞어 킬링타임 영화의 본분을 다한다. 2000년대 일어난 케이블 영화채널 붐에 수혜도 톡톡히 받았고. 그렇지만 저예산으로 흥행한 영화가 그렇듯 시리즈를 억지로 이어가면서 지금은 그냥 그런 B급 영화의 대명사처럼 자리 잡고 말았다.


제5원소, 1997

초창기엔 진지한 드라마 장르를 고집한 뤽 베송이 아예 SF 모험극을 만들면 <제5원소> 같은 영화가 나온다. 이후 그가 제작한 <택시>, <트랜스포터>, <13구역> 등의 이미지가 쌓이면서 이제는 장르 영화감독으로 인상이 박힌 뤽 베송 감독. 다만 지금도 <제5원소>를 뛰어넘는 SF 영화, 혹은 모험 영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단일 작품으로 완벽한 결말을 맺은 <제5원소>라서 파고들 요소가 적은 것과 뤽 베송의 브랜드가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이 맞물려 정말 자주 언급되진 않는다. 다만 특유의 화려한 영상미와 SF 세계관 덕분에 건재하기도 한 편이다.


폭풍 속으로, 1991

​이젠 원제 '포인트 브레이크'나 개봉명 '폭풍 속으로'보다 (토니 스타크가 토르에게 붙인) "금발 양아치"로 더 유명한 영화. FBI 요원 조니 유타(키아누 리브스)가 서핑 그룹을 위장한 범죄조직 리더 보디(패트릭 스웨이지)에게 접근하는 내용. 익스트림 스포츠와 범죄 영화의 만남으로 긴장감과 젊은 감성을 동시에 잡았다. 2015년 동명의 영화로 리메이크됐는데, 익스트림 스포츠를 제외하면 전혀 다른 영화가 돼버려서 묻히고 만다. 애초에 키아누 리브스와 패트릭 스웨이지를 대체할 배우를 찾지 못한 것도 크고.


큐브, 1997

제작비는 영화의 걸림돌일 수도 있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반전 요소로 사용할 수 있다. 빈센조 나탈리 감독의 <큐브>가 예시다. 수많은 방으로 이뤄진 '큐브'를 단 두 개의 세트만을 사용해 관객들에게 상상하게 만들었다. 거기에 장르 영화 클리셰를 뒤집는 인물 구성과 전개로 영리한 연출은 결코 제작비에 좌우되지 않는 걸 입증했다. 하나 영화가 성공하면서 도리어 역풍을 맞았는데, 빈센조 나탈리 감독이 일부러 남겨둔 공백을 속편으로 채우려고 했던 것. 팬들의 궁금증에 보답한다는 의도는 좋았을지언정 원작 이상의 강렬함은 없었고, 시리즈의 완결에 오히려 잊히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스몰 솔저, 1998

​스스로 움직여서 놀아주는 장난감,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이 장난감이 '적'을 잡기 위해 사정 봐주지 않는다면? <스몰 솔저>는 군용 인공지능 칩이 탑재된 장난감들이 판매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뻔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건 설정에서의 좋은 놈, 나쁜 놈이 현실에선 거꾸로라는 점. 장난감치고 수위 높은 전쟁(?)을 펼치는 장면, 인간형 장난감보다 더 인간적인 고고나이트 캐릭터들은 <그렘린>을 만든 죠 단테 감독답다. 주인공은 장난감인데 애들 영화는 아니라 흥행에 실패했고, 대외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영화가 되진 못했다. 물론 본 사람들은 재밌다고 기억하지만.


못말리는 로빈 훗, 1993

​1990년대에 다양한 유행어가 있다. 그중 하나가 '못말리는'이다. 당시 패러디 영화 <못말리는 비행사>가 흥행하자 이런 유의 영화들이 '못말리는'이란 제목을 많이 사용했고, 일종의 시리즈처럼 돼버리는 현상까지 보였다. 그런 패러디 영화 중 하나인 <못말리는 로빈 훗>의 원제는 <로빈 훗: 타이즈 입은 남자들>(Robin Hood: Men In Tights). 상황에 안 맞는 비장함으로 코미디를 유발하는 찰리 쉰이나 레슬리 닐슨와 달리, 능청스럽고 천연덕스럽게 상황에 대처하는 캐리 엘위스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코미디와 뮤지컬 연출의 고수 멜 브룩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라 때때로 등장하는 뮤지컬 장면도 유쾌하다. 멜 브룩스가 직접 자신의 작품 중 가장 잘 팔리는 영화라고 인증했으나, 국내에선 좀 더 '매운맛'인 레슬리 닐슨과 찰리 쉰 작품이 더 유명하다.


스타쉽 트루퍼스, 1997

​<스타쉽 트루퍼스>는 흥행이나 완성도에 비하면 유명한 작품이긴 하다. 비디오나 DVD 판매 성적이 괜찮았고, SF 영화 팬덤이 추천하는 영화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되곤 했다. 다만 어떤 작품이 그 명성을 거의 빼앗아갔는데, 1999년에 등장한 <스타크래프트>였다. <스타크래프트> 또한 <스타쉽 트루퍼스>의 원작 소설에게 영향을 받았는데, 이 게임이 워낙 성공하다 보니 얼떨결에 원작의 영화화보다 더 <스타쉽 트루퍼스>처럼 여겨지고 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타쉽 트루퍼스>의 속편이 비디오영화용으로 제작돼 수준 미달로 나왔고, 시리즈가 갈수록 예전보다 더 잊히고 말았다.


밀러스 크로싱, 1990

이젠 두말할 나위 없이 거장이라 일컬어지는 코엔 형제. 특정 장르나 소재에 얽매이지 않는 코엔 형제는 주로 역설, 모순의 블랙 코미디를 잘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초기작 중에서 갱스터 영화 <밀러스 크로싱>은 유독 덜 언급되는 편. 이 영화 또한 블랙코미디적 요소가 강하지만, 이 작품 전후의 <아리조나 유괴 사건>, <바톤 핑크>를 생각하면 확실히 그 둘보다는 묵직한 편이긴 하다. 차기작 <바톤 핑크>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타고 대표작으로 등극하면서 <밀러스 크로싱>의 입지는 더 얕아졌는데, 잊으면 안 될 사실. 코엔 형제는 <밀러스 크로싱>을 쓸 때 느낀 창작의 고통을 <바톤 핑크>로 풀어낸 것. 즉 <밀러스 크로싱>이 없었다면 <바톤 핑크>도 없었을지 모른다.


언더그라운드, 1995

원래 큰 상에는 수많은 소음이 따르는 법이다. 1995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언더그라운드>도 그랬는데, 실제 역사를 허구적 판타지로 승화한 면에서 유독 비난을 받았다.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은 <언더그라운드>가 비난을 받자, 돌연 은퇴까지 선언할 정도로 작품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언더그라운드>에 몽환적인 면은 영화계보다 관객들이 더 사랑했는데, 지금 와서는 당시의 화제성이나 영화의 완성도에 비해 자주 회자되진 않는다. 영화의 기반이 되는 역사가 흘러가버린 만큼 대중들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변화한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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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s://1boon.daum.net/cineplay/5e6f7bbacca99512707d7b8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