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ovie

<이별계약> 중국에서 대박 난 진짜 이유

[오동진의 이 영화는] <이별계약>, 중국에서 대박 난 진짜 이유

[오동진의 이 영화는] <이별계약>, 중국에서 대박 난 진짜 이유

<이별계약>, 먹고 마시고 사랑하라

남녀 간의 사랑은 가지 수도 참 많다. 웃을 일도 많고 울 일도 많다. 맹세도 많고 서약도 많으며 싸움도 많고 화해도 많다. 그러나 적어도 이런 일은 좀 생소한 편이 아닐까 싶다. 이별을 계약까지 하는 일이 그렇다. 한참을 잘 만나다가 일정 기간 떨어져 있기로, 다시 말해서 이별하기로 계약서를 쓴다는 것인데, 그것 참 그럴 수 있을까 싶다. 한창 사랑하는 연인이 의도적으로 몇 년을 떨어져 지낼 수 있을까. 나중에 만나서 서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며 묻고 힐난하게 되지 않을까. 이건 너무 황당한 얘기가 아닐까. 여기, 차오차오와 리싱의 사랑 이야기가 그렇다.

베이징에서 함께 고등학교를 다닌 챠오챠오(바이바이허)와 리싱(펑위옌)은 대학을 졸업을 할 때까지 죽 사랑을 나누던 사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리싱이 더 매달리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리싱은 챠오챠오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도시락으로 그녀의 미감부터 유혹하기 시작했다. 리싱이 결국 유명 쉐프가 되는 것도 다 이때부터 예고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챠오챠오는 리싱에게 결별 선언을 한다. 그것도 리싱이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하는 바로 그날이다. 챠오챠오는 남자가 가진 것이 하나 없는 상태에서 결혼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극히 현실적인 이유를 내건다. 그녀는 서로가 앞으로 5년의 기한을 갖되 그때까지 각자 다른 상대가 생기지 않는다면 결혼을 하자는 조건을 내세운다. 챠오챠오는 그날 이후 도예 일을 배운다며 바로 상하이로 떠나 버린다. 그리고 5년 후. 둘은 다시 만나게 되지만 이번엔 상황이 역전된다. 중국 최고의 쉐프가 돼 명성과 부를 얻은 리싱은 5년이 되는 바로 그날 챠오챠오에게 전화를 해 자신이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됐다며 그녀를 베이징으로 초대한다. 둘의 사랑이 난타전을 시작하게 되는 순간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둘의 얘기는 영락없이 로맨틱 코미디 감일 뿐이다. 설정은 발칙하지만 전개되는 에피소드는 늘 그렇고 그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어리고 젊은 친구들의 좌충우돌 연애담일 뿐이다. 하지만 <이별계약>은 모두(冒頭)에 깔아 놓는 몇 가지 트랩을 잘 보고 지나쳐야 하는 영화다. 영화의 앞 부분, 방방 뜬다는 느낌이 들 만큼의 가벼운 초반 애정극은 중반 이후 심각하게 하향곡선을 타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들어서면 극장 안은 아예 젊은 여성들의 눈물로 촉촉하게 젖기 시작한다.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가장 중요한 키 워드는 ‘5년의 공백’이다. 아무리 장난스럽게 시작한 일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챠오챠오는 왜 내심 좋아라 마지 않는, 사실은 너무너무 사랑하는 리싱을 5년이나 떠나 있으려고 했을까. 그녀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둘의 사랑은 과연 행복하게 끝날 수나 있는 것일까.

모든 멜로 드라마의 장르적 특질, 그 핵심은 차이에 있다. 남자와 여자라는 차이, 돈이 많고 적음의 차이, 성격이 좋고 나쁨의 차이, 나이의 차이, 유부남과 처녀의 차이 혹은 그 반대, 계급과 계층의 차이, 많이 알고 모름의 차이 등이 그것이다. 멜로 영화에서 두 남녀는 처음엔 늘 큰 차이를 두고 만나며 극이 진행될 수록 이 차이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두 사람이 차이를 좁히는 것, 그래서 서로의 사랑을 진정으로 확인하게 되고 해피엔딩 혹은 그에 준하는 상황에 이르는 것, 그것이야말로 멜로 드라마가 주는 영화적 쾌감이다. <이별계약>도 앞에서는 감추고 있지만 잘 들여다 보면 두 사람 간의 큰 차이를 만들고 시작하는 얘기다.

<이별계약>은 한국의 감독이 중국의 자본과 프로덕션, 배우들과 함께 작업한, 근래에 보기 드문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한국에선 다소 진부하고 낡은 연애감정이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지금에서야 통용될 수 있다는, 기이한 문화적 시간 차가 이런 류의 기획을 가능케 했다. 중국에서는 2억 위안(약 370억 원)을 벌어 들이며 크게 성공했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비교적 적은 수의 스크린에서 개봉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중국사회가 거대한 변화의 급류를 타고 있음을 직감케 한다. 중국의 젊은이들, 특히 대도시 사람들은 더 이상 사회주의적 이상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영화다. 먹고 마시고 사랑하라! 작금의 중국사회가 갖는 제1의 화두다. 하기야 어쩌면 그 같은 모토야 말로 사회주의적 이상에 근접한 것일 수도 있겠다. 사회주의가 무엇인가. 젊은이들로 하여금 다른 걱정과 고민 없이 순수한 사랑을 나눌 수 있게 하는 것, 그들을 배부르게 먹고 마시게 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별계약>은 중국의 공산 정부가 자본주의화의 과정을 심화시키기 위해 사회주의적 이상과 잠시 이별하자며 계약서를 내밀고 있는 영화인 셈이다. 물론 그건 믿거나 말거나의 얘기다.

영화평론가 오동진 ohdjin@hanmail.net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원문 : http://magazine.movie.daum.net/w/magazine/read/detail.daum?thecutId=4743&nil_profile=mediamovie